군시렁군시렁

마님과 언년이

탱굴맘 2009. 6. 4. 22:52

나는 왼손잡이다.

어릴때 엄마의 혹독한 훈련으로 밥 먹는 것과 글씨 쓰는 것은 오른손으로 한다.

정확히 말하면 왼손의 기능이 좋은, 훈련에 의한 양손잡이다.

그런데 왼손과 오른손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왼손은 세밀하고 정교한 것을 잘하고 왼손이 하는 일은 대부분 남보다 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왼손은 자신이 마님,또는 공주나 여왕인줄 안다.

조금만 일하면 더이상 못하겠다고 쉬게 해달라고 자꾸 신호를 보낸다.

오른손은 그야말로 단순,무식에 우직하다.

어지간히 일해도 아프다 하지않고 묵묵히 변치않고 일한다.

그러나 그 기능이 떨어져 오른손이 하는 일은 솜씨하고는 거리가 멀다.

주로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나는 소문난 `악필`이다.

고1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서기로 임명하신적이 있었다.

학기 초에 학급회의때 칠판에  글씨를 쓰게 되었는데 그 이후 1년내내 다시는 칠판에 글씨 쓸 기회가 없었다.

 1년내내 서기는 서기였다.명목상으로만---.

무거운 물건을 든다거나 하는 일도 거의 오른손이 한다.

 

얼마전 마님 왼손이 약간의 일을 했다.

무척 세밀한 일을 조금 했다.

그리곤 자기를 너무 많이 부려먹었다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통증이라는 형태로 나를 괴롭혔다.

조금 쉬게 하면 낫겠지 했는데 쉬게 할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왼손을 많이 부려먹은 것도 아니다.

오른손이 열심히 일할때 조금 보조 해주는 정도 였다.

그랬더니 이제는 시위 정도가 아니라 아주 드러눕고 만다.

할 수 없이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왔다.

몇번 더 다녀야 마님을 달랠것 갔다.

그러니 언년이는 더 고달프다.

우직해서, 착해서,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

 주인 몸둥이가  이끄는데로 그저 일할뿐 불만한번 내밷은 적이 없다.

나는 이를 알면서도 언년이를 더욱 혹독히 부려먹는다.마님 눈치 슬슬보면서-

가끔씩 마님이 조금씩 만들어 주는 장신구나 소품들 따위에 감탄하며 역시 나의 왼손은 언년이와 격이 다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생각해본다.

나의 오른손 처럼 묵묵히 우직하게 사는 것에,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나의 오른손처럼 언년이 취급만 하는 것은 아닐까?

 

'군시렁군시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를 얻다  (0) 2009.09.24
주황날개 꽃매미와 전쟁을 선포하다-  (0) 2009.08.04
짬뽕과 짜장  (0) 2009.07.01
'박쥐'보러 갔다가 시간이 안맞아 돌아왔어요  (0) 2009.05.16
사기 친것 아닌데...  (0) 2009.05.14